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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는 말을 들어온 분들이 있습니다.
정작 본인이 겪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두려움인데도 그렇습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자리가 제일 무섭습니다.
제 차례가 세 사람쯤 남으면 그때부터 심장이 목까지 올라와요.
입이 말라서 침을 삼키는데 그 소리가 옆 사람한테 들릴까 봐 또 신경이 쓰이고요.
막상 제 차례가 오면 아까 속으로 정리해 둔 말이 하나도 안 남아 있습니다.
제 목소리가 떨리는 걸 제가 듣고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서른아홉 살 남성분이 첫 상담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류회사에서 재고 관리 일을 십 년 넘게 해왔고, 숫자를 맞추고 서류를 정리하는 일은 남들보다 빠른 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분을 조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낯을 가려서 그렇다, 원래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한다는 말을 오래 들었습니다. 본인도 그런 줄 알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과 마주 앉아 일 이야기를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말이 길어지는 편이었습니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자기 차례가 다가오는 그 몇 분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분은 사회공포증이라는 말을 검색해 봤습니다. 낯가림이나 소심한 성격을 설명한 글은 많았지만, 자기 경우와 맞아떨어지는 설명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인지 아닌지 스스로 가늠해 볼 만한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자리가 끝난 뒤를 보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그 자리에서 얼굴이 달아올라도 자리가 끝나면 함께 가라앉는 편입니다.
사회공포에 가까운 반응은 오히려 자리가 끝난 뒤에도 이어집니다. 그분도 워크숍이 끝난 뒤 그 주 내내, 자기소개 때 어느 대목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는지를 몇 번씩 다시 떠올렸다고 합니다.
말하는 내내 나를 지켜보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자기초점주의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합니다. 평가받는 상황이 되면 주의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쏠린다는 것입니다.
이때 주의는 밖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합니다. 목소리가 지금 떨리는지, 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방금 한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지를 말하는 내내 확인합니다. 그러는 동안 정작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화상 회의를 해 보셨다면 짐작이 가실 겁니다. 화면 한쪽에 자기 얼굴이 작게 뜨면 회의하는 동안 자꾸 그쪽에 눈이 갑니다. 표정이 굳었는지, 머리가 눌렸는지를 살피는 사이 상대가 방금 한 말을 놓치기도 합니다. 화면 속 자기 모습은 끌 수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동으로 시작되는 자기 점검은 마음대로 멈추기 어렵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는 동안 제가 저를 지켜보고 있어요. 사람들이 아니라요."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집니다. 자기 점검의 결과가 늘 같은 쪽으로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떨렸다, 이상했다, 티가 났다. 반대로 잘 넘어간 대목은 점검에 걸리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연습해도 그 순간 막히는 이유
이쯤 되면 대개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그분도 스피치 학원을 알아봤고 사회성치료라는 말로 검색도 해봤습니다. 자꾸 부딪쳐 봐야 늘 수 있다는 조언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이런 조언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말하는 요령은 연습하면 늘고, 사람들 앞에 여러 번 서 보면 상황 자체에도 익숙해집니다. 다만 익힌 요령은 주의가 밖을 향하고 있을 때 꺼내 쓸 수 있습니다. 주의가 자기 점검에 붙잡힌 그 몇 분 동안에는 준비한 것을 꺼낼 겨를이 없습니다.
증상이 심하면 병원에서 긴장을 낮추는 약을 쓰기도 합니다.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리는 몸의 반응을 가라앉혀 그 순간을 넘기도록 돕습니다. 다만 약을 먹은 날에도 주의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주의가 자기에게 쏠리는 그 몇 분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어려운 점은 이 반응이 마음먹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나를 보지 말고 사람들을 보자고 마음먹고 들어가도, 순서가 다가오는 순간 몸은 그 결심과 상관없이 자기 점검부터 시작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마음먹는 것만으로 바꾸기 어려운 반응을 다룹니다. 사람들 앞에서 올라오는 감각에 집중해 그 감각을 따라가며, 이런 반응이 몸에 익기 시작하던 무렵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어떤 감정이 남았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식탁 위의 색칠한 종이
이분의 상담에서도 그 감각부터 찾았습니다. 순서가 다가올 때 몸 어디가 먼저 반응하느냐고 여쭈니 명치 위쪽이 조여든다고 하셨습니다. 그 조임에 집중한 채 최면이 깊어지자, 본인도 뜻밖이었다고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집 식탁입니다. 색연필을 아직 주먹으로 쥐던 나이의 아이가 의자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색칠 공부 책 한 장을 칠하고 있습니다. 다 칠한 뒤 그 장을 뜯어 옆에 있던 어른에게 내밉니다.
어른은 종이를 받아 들고 손가락으로 한 곳을 짚습니다. "여기 나갔네." 조금 아래를 또 짚습니다. "여기도."
잘 칠한 데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종이는 그대로 아이에게 돌아옵니다.
다음 장을 다 칠한 뒤에는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는 종이를 바로 내밀지 않습니다. 자기 앞으로 당겨 놓고 가장자리를 따라 눈으로 훑습니다. 선 밖으로 나간 데가 있는지 자기가 먼저 찾습니다.
어른에게는 색칠 한 장을 봐 준 저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 자기가 느끼는 것을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는 그 일을 겪으며 한 가지 순서를 익혔습니다. 무엇이든 내놓기 전에 틀린 데부터 찾아 두어야 한다는 순서였습니다.
어른이 짚어 주지 않아도 아이는 이제 혼자 짚었습니다.
그 식탁 옆에 지금의 그분이 가서 섰습니다. 아이가 종이를 당겨 놓고 훑기 시작하자, 그 종이를 아이 손에서 가져와 자기가 먼저 끝까지 보았습니다. 삐져나온 데를 짚는 대신 잘 칠한 데를 하나씩 짚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종이를 돌려주면서, 이건 네가 볼 것이 아니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이는 다음 장을 칠할 때 종이를 앞으로 당기지 않았습니다.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그분의 오른손 검지는 무릎 위에서 무언가를 짚듯 짧게 움직였습니다. 본인은 그러고 있는 줄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있었던 일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일을 겪은 아이가 혼자 내린 결론입니다. 색칠한 종이는 그날로 끝났지만, 내놓기 전에 흠부터 찾아 두어야 한다는 결론은 그대로 남아 자기 차례가 올 때마다 먼저 나왔습니다.
동창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
요즘 그분은 몇 해째 이름만 올려 두고 나가지 않던 동창 모임에 나갑니다. 지난달에는 열 명 남짓이 둘러앉아 한 사람씩 근황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것은 자기가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옆자리 친구가 새로 시작했다는 일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그 친구에게 연락해 다음에 한번 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처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배사를 맡은 날도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잔을 들면서 옆 사람에게 순서를 넘겼을 겁니다.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마음이 약해서도, 부끄러움이 유난히 많아서도 아닙니다. 그 몇 분 동안 주의가 밖이 아니라 자기에게 쏠리도록 몸에 익은 반응입니다.
며칠 전 어떤 자리에서 자기가 한 말의 어느 대목이 지금도 다시 떠오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떠올리자고 스스로에게 말해 보셨다면, 그 말만으로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겪어 보셨을 겁니다. 다음에 또 순서가 돌아올 때 무슨 말을 준비할지 고르기 전에, 먼저 짚어 볼 것이 있습니다. 그 자기 점검이 어디서부터 몸에 익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