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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굳는다고 하면 대개 비슷한 말을 듣습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 봐라. 표정도 습관이니 자꾸 지으면 자연스러워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표정공포증으로 상담을 오시는 분들은 이미 그 연습을 오래 해 본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연습한 표정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웃으려고 하면 입꼬리가 올라가다 말아요. 볼이 딱딱하게 잠기는 느낌이 들면서요.
그러면 지금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까 싶어 더 굳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다들 웃는데 저만 표정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 웃는 시늉을 하다 보면,
집에 올 때쯤엔 턱이 얼얼하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요."
서른 초반의 여성분이 상담실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셨습니다. 얼굴이 굳는 건 학부모 상담을 하거나 강사들끼리 밥을 먹을 때처럼 어른들과 마주 앉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했습니다. 하루 종일 웃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어른 서넛 앞에서는 인사 한 번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표정이 잠기는 것
짚고 갈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얼굴 한쪽만 움직이지 않거나, 혼자 있을 때도 표정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말이 새고 눈이 잘 감기지 않는다면 신경과 진료부터 받아 보셔야 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이런 소견은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만 얼굴이 잠기는 경우입니다.
스스로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표정이 아예 시작되지 않는지, 시작됐다가 중간에 멈추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웃음 자체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기분 상태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반면 웃음이 분명히 시작됐는데 지금 내 얼굴이 어떤지 확인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딱 멈춘다면, 얼굴 근육의 문제라기보다 그 순간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의학적 진단을 할 수는 없고, 스스로 가늠해 보는 정도입니다.
익숙한 계단에서 발끝을 내려다볼 때
표정은 원래 우리가 하나하나 지시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웃어야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이미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얼굴 근육은 이렇게 저절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원래 저절로 되던 움직임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어색해집니다. 매일 오르내리던 계단도 발끝을 내려다보며 한 칸씩 의식해서 내려가 보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계단인데, 발을 보며 내려가면 걸음이 엉키고 무릎에 힘이 들어갑니다. 걸음이 엉키는 게 보이니 더 내려다보게 되고, 더 볼수록 더 어색해집니다.
표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려고 주의가 자기 얼굴로 쏠리는 순간, 저절로 이어지던 표정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려 들게 됩니다. 그러면 얼굴이 뻣뻣해지고, 그 뻣뻣함이 느껴지니 다시 얼굴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분은 아침마다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잘 돼요. 그런데 학부모님 앞에 앉으면 그 표정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긴장 반응도 더해집니다. 뇌 안쪽에는 지금 상황이 안전한지를 계속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편도체가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몸은 곧바로 대비 상태에 들어가고, 이때 근육에 힘이 들어갑니다. 사람들과 마주 앉는 상황이 위험한 상황으로 학습되어 있으면 얼굴 근육에도 먼저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한 연습이 사람들 앞에서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거울 앞에는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 없고, 얼굴을 굳게 만드는 조건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도움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지나치게 올라가는 긴장을 약이 가라앉혀 주면 그 상황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다만 사람들과 마주 앉는 일이 왜 그렇게까지 대비해야 할 상황으로 분류되었는지는 다른 방향에서 살펴보게 됩니다.
그럼 굳어 버리는 이 반응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머리로 안다고 해서 이 반응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굳는다는 것도 알고,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도 먹습니다. 하지만 얼굴은 마음먹기도 전에 이미 굳어 있습니다.
문제는 반응이 일어나는 순서입니다. 이 반응은 생각해서 켜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먼저 시작되기 때문에, 생각으로 끄려 하면 늘 한발 늦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보다 앞서 일어나는 부분을 다룹니다. 얼굴이 굳는 순간 함께 올라오는 감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아, 그 감정과 묶여 있는 오래된 경험과 그때 익힌 무의식의 자동반응을 다시 다룹니다.
손님이 오던 날의 거실
얼굴이 굳기 직전에 무엇이 먼저 느껴지는지 여쭈니, 뒷목이 뻣뻣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깊어지자 그 뻣뻣함이 오히려 또렷해졌습니다. 그 느낌이 더 선명해지는 동안 오래전의 거실 장면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아직 어른 무릎께밖에 오지 않던 때였습니다. 집에 손님이 와 있고, 아이는 소파에 앉아 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먹다 만 과자가 쥐여 있습니다.
어른이 다가와 아이의 발을 소파 아래 바닥에 내려놓고, 등을 세운 뒤, 과자를 든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줍니다. "손님 오셨는데 똑바로 앉아야지."라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잠시 뒤 발이 다시 흔들리면 어른이 또 다가왔습니다.
나중에는 아이가 먼저 자기 몸을 확인합니다. 어른이 오기 전에 발이 바닥에 닿아 있는지, 등이 굽지 않았는지, 손이 제자리에 있는지 스스로 살핍니다. 그러는 사이 손안의 과자는 부스러져 갔습니다.
손님이 보기에는 얌전한 아이였을 것입니다. 어른에게도 그날 하루의 예절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도 길게 못 하던 아이가 그 거실에서 익힌 것은 달랐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계속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시작된 확인은 자라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어릴 때는 발과 등, 손을 살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곳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분의 두 발은 바닥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발끝이 안쪽으로 모인 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최면은 계속 깊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 거실로 들어가 아이 앞에 앉았습니다. 자세를 고치려고 뻗어 오는 어른의 손을 가만히 받아 내리고, 발은 흔들어도 되고 과자는 마저 먹어도 된다고 아이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아이가 손님 쪽을 한 번 보더니 다시 자기 손에 든 과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부스러진 과자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그 장면이 끝났습니다.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반응이 곧바로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 거실에서 아이가 혼자 내린 결론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 있는 나는 그냥 두면 안 되는 상태라는 결론이었고, 그 결론이 바뀌어야 자기 얼굴부터 확인하던 습관도 멈춥니다.
지우지 않은 사진 한 장
요즘 그분은 몇 해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하셨습니다. 대학 때 붙어 다니다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얼굴이 굳어 어색해진 뒤로 먼저 연락하지 못하던 친구였습니다. 둘은 만나 세 시간 가까이 함께 앉아 있다가 헤어졌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친구가 둘이 나온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자기 얼굴을 확대해 보고 곧바로 지웠을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표정공포증으로 힘든 분들이 가장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자연스럽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것은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확인을 멈추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확인부터 하게 되니, 그 말은 들을수록 얼굴을 더 굳게 만듭니다.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웃으려다 얼굴이 굳었고, 집에 와서 그 표정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셨다면 지금 살펴볼 것은 얼굴 자체가 아닙니다. 언제부터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몸을 그렇게 살피게 되었는지입니다. 그 습관은 의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먹는 것만으로 멈추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