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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열이틀째였습니다. 열흘 넘게 한 잔도 안 마셨으니 이제 됐다 싶었어요.
그런데 어제 일이 틀어져서 늦게 나오는데, 편의점 불빛을 보는 순간 속이 텅 빈 것처럼 허해지고
입안에 침이 고였습니다. 정신 차려 보니 계산대 앞이었고요.
이번엔 진짜 끊을 줄 알았는데 또 이럽니다."
마흔을 넘긴 남성 한 분이 첫 상담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술 끊는 방법을 아무리 바꿔 봐도 며칠 만에 다시 마시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그분은 술 끊는 법이라면 찾아볼 만큼 찾아봤다고 하셨습니다. 집에 술을 두지 않았고, 저녁 약속을 줄였으며, 달력에 하루하루 표시도 해 봤습니다. 검색해서 읽은 글은 대부분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는 말로 끝났습니다. 그 말이 틀려서 답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방법이든 며칠 동안은 잘 통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열흘을 참아 놓고 한 시간 만에 무너지면 남는 것은 자책뿐입니다. 술 하나 못 끊는 사람이라는 말이 스스로에게서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열흘을 견딘 사람과 그날 저녁 다시 술을 마신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견디는 힘 자체가 없었다면 애초에 열흘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열흘을 넘기고도 한 시간에 무너지는 이유
한 가지는 먼저 짚어야 합니다. 술을 며칠 끊었을 때 손이 떨리거나 식은땀이 나고 잠을 거의 못 자는 것처럼 몸에 뚜렷한 반응이 나타난다면, 병원에서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기서는 그런 신체 반응보다 마음이 먼저 술을 찾게 되는 경우를 다루겠습니다.
어느 쪽에 가까운지 스스로 짚어 보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술을 참았던 며칠 동안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되짚어 보시면 됩니다. 참는 내내 비슷한 정도로 계속 힘들었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반면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특정한 저녁이나 특정한 기분에서만 갑자기 마시고 싶은 마음이 확 올라왔다면, 그 순간에 술을 찾게 만드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셈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기분이 술과 이렇게 짝지어지는 것을 조건화라고 합니다. 두 가지를 여러 번 함께 겪으면 뇌가 둘을 한 묶음으로 익혀, 나중에는 한쪽만 나타나도 다른 쪽이 저절로 따라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전에 자주 듣던 노래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앞 소절만 흘러나와도 다음 소절이 저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외우려고 애쓴 적도 없고, 부르지 말아야지 마음먹어도 이미 입에서 나오곤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 일도 없다가 앞 소절이 들리는 순간에만 반응하는 것입니다.
술도 이런 방식으로 익혀질 수 있습니다. 일이 틀어진 저녁, 혼자 걷는 퇴근길, 늦은 시간의 편의점 불빛 같은 장면이 술과 반복해서 함께 경험되면, 나중에는 그 장면만 나타나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은 그다음의 일입니다. 이미 올라온 마음을 뒤늦게 붙잡아야 하니 매번 힘이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술을 치워도 저녁이 오면 다시 시작된다
그렇다고 술 끊는 방법으로 흔히 권해지는 것들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집에 술을 두지 않으면 술이 손에 닿기까지 한 단계가 늘어나고, 그 단계에서 멈추는 저녁이 실제로 생깁니다. 병원에서 마시고 싶은 마음을 낮추는 약을 쓰거나 단주 모임에 나가는 것도 버티는 힘을 키워 줍니다.
그분도 그중 몇 가지는 이미 해 봤습니다. 집에 있던 술을 모두 버린 다음 날 저녁, 걸어서 삼십 분 거리의 마트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런 방법들은 이미 올라온 마시고 싶은 마음을 넘기는 데 주로 힘을 씁니다. 그 마음을 불러오는 연결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힘이 빠지는 저녁이 오면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연결은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노래 가사를 외우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듯이, 어떤 상황을 술과 묶어 두겠다고 일부러 결정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만든 반응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는 것만으로는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이 다루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술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 몸에서 무엇이 함께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그 느낌을 따라가 같은 느낌을 처음 겪던 무렵의 경험과 당시의 마음을 다시 다룹니다.
속상한 날마다 손에 쥐어지던 것
그분과의 상담도 그 감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마시고 싶어질 때면 명치 아래가 텅 빈 것처럼 허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에 들어가 그 허한 느낌에 머무르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오래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의 거실입니다. 아직 말이 몇 마디밖에 트이지 않은 아이가 울음 섞인 소리를 내며 어른 곁으로 갑니다. 어른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찬장을 열어 늘 같은 과자 봉지를 꺼내 아이 손에 쥐여 줍니다. 그러고는 텔레비전을 켜 만화를 틀어 놓습니다.
봉지 뜯는 소리가 나고 화면에서는 밝은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아이는 과자를 입에 넣은 채 화면을 바라봅니다. 조금 지나자 울음이 멎습니다.
어른에게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다른 방식이 익어 갔습니다. 속이 상하면 그 마음을 말하는 대신, 손에 쥐어진 것을 입에 넣고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는 순서였습니다. 그런 오후가 여러 해 되풀이됐습니다.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참을성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배우지 못한 것은 참는 법이 아니라, 속이 상했을 때 그 마음을 다루는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힘든 마음을 넘기는 방법을 하나만 익힌 채 살아왔다면, 어른이 되어 그 한 가지를 놓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신할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그분은 최면 안에서 그 거실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먼저 텔레비전을 껐고, 아이 손에 들린 과자 봉지를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 앞에 앉아 무엇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끝까지 들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는 동안 그분의 입술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다가 천천히 풀렸고, 중간에 침을 한 번 삼키셨습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했는지는 장면 안에서 끝내 또렷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다 했다는 것으로 그 오후는 끝났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분은 과자를 쥐여 준 일이 지금 술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으셨습니다.
밥상에서 그날 일을 말한 저녁
요즘 그분은 일이 틀어진 날이면 그 이야기를 집에서 꺼낸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저녁일 수록 아무 말 없이 늦게 들어갔습니다. 지난주에는 계약 하나가 엎어진 날 밥상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말을 다 하고 나니 편의점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하셨습니다. 달력에 며칠째인지 적어 두던 일도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됐는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오늘이 며칠째인지 세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세는 날짜가 자꾸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문제는 세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지 않습니다. 속이 상할 때마다 몸이 먼저 술을 찾도록 익어 버린 반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반응이 언제, 어떻게 익었는지는 다시 살펴볼 수 있습니다.










